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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7) : 전쟁 범죄, 대량 학살 그리고 착취 사상자와 전쟁 범죄(Casualties and war crimes) 세계 2차 대전은 전쟁에 참가한 국가만큼이나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총 사상자 수에 대한 추정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약 2천만 명의 군인과 4천만 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6천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소련은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히는 데, 군인 870만 명, 민간인 1,900만 명을 포함하여 약 2,700만 명이 사망했으며, 독일은 소련과 접한 동부 전선 및 독일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530만 명의 군인이 사망했습니다. 히틀러의 인종 차별 정책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1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약 600만 명의 유대인, 로마인, 동성애자, 최소 190만 명의 폴란드인, .. 2024. 4. 12.
세계 2차 대전(6) : 전쟁의 여파 독일과 유럽의 분할 연합군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점령군이 관할하는 행정부를 설립했는데, 두 곳 모두 처음에는 서부 연합군과 소련이 각각 통제하는 서부 점령 지역과 동부 점령 지역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두 점령 지역은 1949년 공식적으로 종료되어, 각각의 지역이 서독과 동독이라는 별도의 국가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1955년까지 점령이 계속되었고, 서부 연합군과 소련의 합의 하에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었습니다. 독일은 전쟁 전(1937년) 영토의 4분의 1을 잃었습니다. 동부 지역 중 슐레지엔, 노이마르크, 포메라니아 대부분은 폴란드에 점령당했고, 프로이센은 폴란드와 소련으로 분할되어 이 지역에 살던 900만 명의 독일인이 독일로 추방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서독인의 5분의.. 2024. 4. 9.
세계 2차 대전(5) : 연합군의 승기 이번 글은 연합군의 공세와 함께 승기를 잡게 된 상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합군의 총공세 1944년 6월 6일(일반적으로 D-Day로 알려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시행일),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를 공격하였고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8월 25일에는 샤를 드 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지역 저항군이 파리를 점령하였으며, 그해 후반 동안 연합군은 서유럽에서 독일군을 계속해서 몰아냈습니다. 6월 22일 소련군은 벨로루시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을 시작하여 독일 중앙군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그 직후 독일군을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동부에서 몰아냈습니다. 또한 소련은 루마니아 동부를 공격하여 독일군을 차단하고 파괴했으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성공적인 쿠데타를 촉발시켰고 이어서 이들을 .. 2024. 4. 8.
세계 2차 대전(4) : 전쟁의 발발과 확전 이전 글에 이어 세계 2차 대전의 확전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련에 대한 추축국의 공격 (1941) 유럽과 아시아의 상황이 비교적 안정되자 독일, 일본, 소련은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히틀러는 영국이 전쟁 종식을 거부하는 것은 미국과 소련이 조만간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할 것이라는 희망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940년 7월 31일, 히틀러는 소련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 국가 및 벨로루시를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이탈리아와 루마니아의 지원을 받아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 명 아래 소련을 침공했고, 독일은 소련이 그들에 대항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독일의 .. 2024. 4. 7.